현대문명과 동물 4

 

글 / 임동주

마야무역 대표. 수의사


미국의 역사학자 블리엣은 가축 사육을 전기사육시대, 사육시대, 후기사육시대로 구분하면서 사육의 개념을 각 시대별로 특징지었다.

그에 따르면 전기사육시대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하고 동물에 대한 신성한 상징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의 모습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사육시대는 가축화된 동물을 기르고 이용하는 인간 지배적인 시기다. 인류는 동물과 함께 교감하며 살아오는 과정을 통해 동물을 길들였고, 그들로부터 젖과 고기를 얻어 인류의 오랜 염원인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인류는 젖과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가축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다. 가축들이 맹수들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먹이를 주며 키워왔다. 가축은 인간의 동반자였고, 인간은 가축의 보호자였다.

현대식 돼지 사육 농장. 사진 필자제공
현대식 돼지 사육 농장. 사진 필자제공

가축과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공장식 가축사육이 등장하는 후기사육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후기사육시대에 접어들면서 동물과 인간의 유대관계가 크게 약화되었다. 개와 고양이는 집에서 키우는 가축에서 벗어나 반려동물로 지위가 격상한 반면, 오래도록 인간과 함께 일하던 소중한 가축인 소는 산업동물로 탈바꿈되어 대중과 멀어졌다.

인간은 고기와 가죽 등 축산물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산업동물을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이 대규모로 사육한다. 대규모 목장에서 대량으로 키워지는 산업동물은 일반 사람들이 내부를 거의 볼 수 없는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고 깨끗한 포장육으로 도시 상점에서 부위별로 판매된다.

가죽은 의류 가공업체 등에 넘겨져 가죽옷이나 벨트, 가방 등으로 새롭게 변신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상점에서 고기를 구매하면서 동물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또 어떻게 도살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저 맛이 좋거나, 보기 좋거나, 값이 싼지 여부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산업동물의 등장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의 결과로 가축이 산업동물로 분류된 것 뿐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육류를 섭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각종 설비를 갖춘 대규모 농장이 생겨났다.

이들의 목적은 단지 짧은 시간 내에 크게 키워 출하하는 것뿐이다. 닭의 경우, 예전 농가에서는 겨우 십여 마리 키우는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십만 마리를 키우는 초현대식 양계장으로 탈바꿈했다.

산업동물을 진찰하는 수의사. 대규모 밀집 사육이 성행하면서, 동물 질병의 발생은 높아져 가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산업동물을 진찰하는 수의사. 대규모 밀집 사육이 성행하면서, 동물 질병의 발생은 높아져 가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소나 돼지, 닭 등 대규모로 키워지는 산업동물들은 과거의 가축들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반려동물의 경우 인간과 정서적 교감이 오가지만, 산업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주인이 일일이 가축과 정서적 교감을 가질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

산란용 닭을 A4 종이 크기의 좁은 케이지 안에 넣고, 잠도 덜 자게 전등을 오래 밝히면서 물과 사료만 준다. 전등을 오래 밝히면 닭은 잠잘 생각을 못 하고 계속 사료를 먹으면서 알만 낳는다. 몸은 곯지만 생산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육계용 닭도 비좁은 비닐하우스 등지에서 과밀 사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육계용 병아리는 생후 30일 만에 치킨용으로 팔려간다. 산란계가 되면 2년까지 살지만, 거의 매일 알을 낳아야 한다. 자연 수명인 10살까지 사는 경우란 거의 없다.

이렇듯 대규모 농장은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생필품 공장처럼 알과 고기를 뚝딱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닭고기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매년 수억 마리가 넘는 육계를 생산해야 한다. 넓은 공간에서 기르는 복지사육은 이상적이지만, 생산성이 너무 떨어진다.

공장식 사육은 필요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량생산 방식인 공장식 사육을 완전히 없애고자 한다면, 현대인은 지금처럼 고기를 싸게 구입할 수 없게 된다. 대규모 사육 덕분에 인간의 식생활이 개선되고, 영양이 개선되었으며, 축산농가가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공장식 대규모 밀집 사육은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유행성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산업동물의 위생과 건강, 복지를 위해 축산농가, 수의사,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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